지금 멋진 여자들은 2014년처럼 아빠 신발을 신는다
물론 그 멋진 여자가 저는 아닙니다. 영국 <보그> 뉴스 에디터 데이지 존스가 모두 10년 전 신발을 신고 있다는 기사를 썼기에 유심히 읽어보게 되었죠. 지금 패션계가 온통 2010년대 초 분위기인 것은 확실합니다. 당시 대학을 막 졸업한 시기라 정확히 기억하고 있거든요. 당시를 일컬어 <보그>는 ‘혼돈의 시대’로 명명한 바 있으며, 지금처럼 맥시멀 분위기로 흘러갔습니다. 원피스를 입고 있는 제 맞은편에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앉아 있던 친구가 기억납니다. 그리고 각자 두툼한 뉴발란스와 나이키를 신고 있었던 것도요. 발레리나 슈즈처럼 밑창이 얇은 신발이 절정에 이른 지금, 두툼하고 청키한 운동화가 돌아온다는 신호일까요?
데이지는 코펜하겐 패션 위크의 메인이었던 세실리에 반센의 2026 봄/여름 쇼를 증거로 내세웠습니다. 모델들은 산뜻한 휘핑크림색의 드레스 차림으로 레프샬레외엔(Refshaleøen)의 삭막한 콘크리트 공간을 걸었습니다. 그들의 발에는? 1990년대 체육 시간에나 신었을 법한 두툼한 화이트와 실버 컬러 아식스 운동화가 신겨져 있었죠. 세실리에의 모델들이 아식스를 신은 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브랜드가 아식스와 꾸준히 협업해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프라다가 콜랩스 같은 슬림한 운동화를 선보인 가운데, 느닷없이 잔디 깎는 미국 아빠의 운동화라뇨. 징후가 보이긴 합니다. 스니커즈계에는 삼바 같은 원톱이 나타나지 않고 있죠. 아디다스를 외치던 사람들 뒤에서 아식스와 뉴발란스, 그리고 특히 나이키가 기세를 올리는 중이라는 평이 있거든요. 모양은 태권도처럼 운동화의 텅부터 발끝까지 미끈하게 직선을 이루지만, 그래도 다른 브랜드를 선택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건 아식스의 젤-키네틱 플루언트 같은 모델뿐만 아니라 래리 데이비드가 조깅할 때 신을 법한 그레이&오프 화이트 계열의 트레이너까지 포함됩니다.
이 모든 흐름은 2010년대 초반을 가리키는 게 사실이고, 그것이 매력으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2014년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놈코어(Normcore)’라는 단어도 알 겁니다. 뉴욕에서 활동하던 트렌드 예측 회사 ‘케이홀(K-Hole)’이 만든, 노말과 하드코어의 합성어로 평범한 것이 트렌디해지는 것을 뜻하죠. 당시 작가 피오나 던컨(Fiona Duncan)은 <더 컷(The Cut)>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여름, 소호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구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들이 예술을 좋아하는 아이들인지, 아니면 중년의 미국 관광객인지 말이죠. 스톤 워시 진과 플리스에 편한 운동화를 신은 그들은 마치 타임스스퀘어에서 쇼핑을 마치고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렇다면 시간이 충분히 흘렀으니, 이런 스타일이 다시 돌아올 때가 된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같은 시대의 아이폰4와 인스타그램 필터까지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놈코어 자체가 부활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반(反)트렌드 스타일에 끌리고 있죠. 사람들이 끌린다면, 곧 트렌드가 되겠지만요(드리스 반 노튼의 정교한 룩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못생긴 체육화’만큼 쿨한 게 어디 있나요!).
영국 <보그>의 대니얼 로저스는 1월 패션 위크에서 2017년 발렌시아가 트리플 S 스니커즈를 신고 이렇게 썼습니다. “끔찍해 보이는 것 혹은 그냥 촌스러워 보이는 것은 사실 엄청난 해방감을 줍니다.”
물론 현재 아빠 운동화의 부활에는 부분적으로 아식스의 상승세가 한몫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 스탁엑스의 연중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아식스는 올해 71% 성장하며 가장 빠르게 성장한 신발 브랜드가 됐습니다. 젤-1130 모델이 가장 많이 팔렸고요. 어떤 제품이 인기를 끌면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는 경향이 있죠. 삼바나 태권도가 그 예입니다.
아식스 스포츠스타일 유럽(Asics SportStyle Europe)의 PR 및 협업 책임자 아니사 재프리(Anissa Jaffrey)는 올 초 영국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에는 매끄럽고 역동적인 갑피와 혁신적인 솔 구조가 특징인 테크 감성이 인기를 끄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프라다를 사랑하는 저는 아직은 납작한 운동화가 출시되기만 기다리고 있지만요. 슬슬 실루엣이 다른 새로운 운동화가 궁금해집니다. 지금도 편하지만, 그때는 정말 자유로웠거든요. 지퍼 달린 플리스에 맘 진을 입고 신발 끈을 질끈 묶은 뒤 친구와 밤새 서울 거리를 산책했던 기억이 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