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것들을 불편하지 않게 얘기할 수 있을까? ‘프로보노’
드라마 <프로보노>(tvN) 6화. 공익 변호사 강다윗(정경호)은 억울한 일을 겪고 추방 위기에까지 몰린 이주 여성 의뢰인의 망명을 신청한다. 판사가 묻는다. “대한민국에서 박해를 당했다면서요? 그럼 당연히 제3국에 난민을 신청하거나 망명 신청을 하는 게 상식이지 왜 대한민국에 망명을 신청한다는 겁니까?” 다윗은 의뢰인을 박해하는 “야만적인 대한민국”으로부터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의 망명이라고 주장한다.
다윗이 법적 논거라고 든 것은 북한이다. “북한을 봐라, 대한민국 영토 일부를 실효 지배하는 다른 체제가 존재하지 않느냐. 내 의뢰인이 박해를 받은 곳은 가해자와 방관자들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 일부 영토였으니 이 땅의 유일한 합법 정부인 진짜 대한민국으로 망명을 하겠다.” 다윗의 저 말은 작품 전체의 주제 의식이 담긴 감동적인 웅변이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주장하는 ‘진짜 대한민국’은 관념일 뿐인데 그것이 의뢰인을 박해한 ‘야만적 대한민국’과 ‘법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것 말고도 <프로보노>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지점이 많다. 실제 판사 출신이자 <미스 함무라비>의 원작자 문유석 작가가 집필했지만 최근 법정 드라마와 비교하면 리얼리티가 가장 떨어지는 축에 속한다. 법정 묘사부터 그 안의 공방과 판결까지, 많은 부분이 리얼리즘보다는 우화에 가깝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로보노>는 시쳇말로 ‘T’들에게는 고통스럽고, ‘F’들에겐 소구할 여지가 있는 작품이다.
극 중 강다윗은 스타 판사였다. 출근길에 소설책을 읽고, 부패한 기득권에 엄정한 판결을 내리고, 법원 직원을 가족처럼 챙겨서 대중의 호감을 샀다. 하지만 이건 다 허상이다. 사실 강다윗은 집안, 학력에 콤플렉스가 있고 출세욕도 엄청나다. 재벌 회장에게 엄정한 판결을 내린 건 어차피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걸 알아서고, 직원을 챙기는 건 그들이 대법관 추천 위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윗은 대법관 지명을 앞두고 고약한 함정에 걸려든다. 그의 자동차 트렁크에서 뇌물로 추정되는 현금 상자가 발견된 것이다. 다윗은 법원에서 퇴출되어 대형 로펌의 소외 부서인 프로보노 팀에 들어간다.
드라마 초반은 유머러스하다. 정경호 특유의 능청이 배역과 잘 어울리고, 기존 프로보노 팀의 PC주의와 세속주의자 강다윗의 충돌에서도 간간이 웃음이 터진다. 여전히 출세욕을 놓지 못한 강다윗은 프로보노 팀의 승률을 높이고 공익 변호사로 인기를 끈 다음 대법관이 되겠다는 새로운 전략을 세운다. 이쯤에서 시청자는 예상할 것이다. 승률을 높이기 위해 전관 동원 같은 치사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다윗과 고지식한 정의파가 서로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고, 결국 프로보노의 의미를 일깨우는 드라마가 되겠구나, 이기적인 동기에서나마 옳은 일을 행하다가 끝내 동조하게 되는 인물을 통해 ‘위선의 가치’를 일깨우는 스토리가 아닐까. 그러나 드라마는 어쩐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강다윗이 얼떨결에 퀴어 퍼레이드에 끌려가서 홍보를 하거나 판사에게 휠체어 타기 체험을 시키는 장면처럼 사회적 약자의 세계를 드라마에 노출한 것은 반갑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소송 당사자들이 걸핏하면 억지 요구를 하고, 다윗이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개인의 결핍을 해소해줌으로써 갈등이 종결되는 형태가 반복되는 건 아쉽다.
다윗의 첫 공익 사건은 동물 구조 활동가가 학대당하는 개를 훔쳐서 입양시키고는 시치미를 떼었다가 들통이 나서 벌어진 일이다. 활동가가 주인을 찾아 항의하거나 정식으로 신고하는 대신 개를 훔친다는 건 실제 활동가에게 모욕적인 묘사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다윗이 개 주인의 아버지인 유력 정치인을 협박하고, 소실됐던 동물 학대 장치를 찾은 것처럼 꾸며내 개 주인이 소를 취하하게 만드는 건 현실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해법이다. 그 과정에서 동물보호법의 맹점 같은 더 구조적인 문제는 스치듯 언급될 뿐 거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장애인 어린이가 자신을 태어나게 만든 신을 고소하겠다 우겨대고, 다윗이 신 대신 병원을 고소하자고 나서는 에피소드도 황당하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임신 중단을 원했지만 병원 측이 말렸다거나 의사가 장애 가능성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정보가 있지만 이것들은 의료 사고가 아닌데 왜 병원이 고소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다. 극 중 소송은 ‘장애인은 태어날 가치가 없는가’라는 논쟁으로 번진다. 만일 다윗 측이 승소한다면 다른 장애인 아기들의 생명권이 위태로워지거나, 임신한 가출 소녀들을 위한 무료 의료 지원이 중단될 수도 있는 문제인데, 이런 부작용은 언급되지 않는다. 이게 과연 공익인가? 드라마는 이 주제에 대해 시청자를 설득하거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대신 병원장이 장애인 어린이를 입양한다는 얼렁뚱땅 해피 엔딩을 제시한다.
결혼 이주 여성이 시아버지에게 강간당하고도 혼전 출산력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인 취소와 비자 만료로 인한 추방 위기에 몰린 사건에서, 다윗은 서두에 언급한 감동적인 웅변을 한다. 또한 전국의 공익 변호사들이 총출동해서 방청석을 메우고 지지 의사를 밝힌다. 다윗은 정치권의 이벤트에 맞춰 여론전도 펼친다. 결국 대대로 애국자 집안 출신이라는 판사가 다윗에 동조한다. 대한민국 언론이 공익 사건에 그렇게 관심이 있지도 않고, 판사들 역시 여론이나 국민의 법 감정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엘리트 집단이라는 현실을 떠올리면 이 역시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사이다 판타지다.
<프로보노>는 그 제목과 달리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을 공감 가게 풀어내거나, 그들을 위한 법적 장치를 제언하는 데 미치지 못한다. 흥미로운 소재를 제시하면서 그 소재의 뾰족함은 깎아내고 핵심은 우회하면서 서둘러 결론을 내고 감정에 호소하는 패턴이 반복되니 극적 긴장감도 떨어진다. 불편한 것들을 불편하지 않게 얘기하려니 불편해지는 역설이다. 강다윗을 제외한 프로보노 팀 변호사들이 오합지졸로 그려지는 것도 아쉽다. 이런 묘사가 공익 변호사의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은 차치하더라도, 조연 앙상블이 부재하니 코믹 드라마의 잔재미가 떨어진다.
그럼에도 주인공 캐릭터의 매력은 유효하다. 다윗이 재판 때마다 판사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공을 들이고 그에 맞춰 전략을 짠다는 설정은 그를 공익 사건의 ‘승리 요정’처럼 묘사하기 위한 장치이긴 하나 한편으로는 현 사법 시스템의 허점을 지적하는 블랙코미디 요소라 눈길이 간다. 또한 다윗에게 누명을 씌운 흑막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은 드라마 후반부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몰입을 유발하기보다는 거리감을 갖게 되는, 그러나 아직은 지켜보고 싶은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