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내는 선, 번져나가는 선, 말하는 선
회화의 초석인 선은 때론 비워내고 번져나가며 목소리를 전합니다. 회화 속 한 획 한 획의 의미를 톺아볼 수 있는 전시를 소개합니다.
비워내는 선으로 채운 도시의 흔적
<Seoul Syntax>
당신에게 서울은 승패가 결정되는 전장인가요? 아니면 안식처인가요? 평생 서울에 살며 도시의 초상을 담아낸 백현진 작가의 회화적 어법이 변화했습니다. 과거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을 위한 그림’에서 여러 번의 붓질로 서울의 황량함을 조명했던 그는 3월 21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에서 서울의 양면성을 최근작 ‘PW 0082025’의 간결한 선으로 끌어안았죠. 백현진 작가는 드라마 <무빙>과 <모범택시>의 빌런을 연기한 배우이자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이며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로 선정된 전방위 예술가입니다. 삶 자체가 서울의 가변성을 체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는 도시의 서사를 담아낸 영상 작업 ‘빛23’도 선보여요. 비를 맞으며 웃다가 돌연 웃음을 거두고 심각해지는, 기상 변화에 따라 급변하는 주인공의 희로애락은 서울에서의 성공과 실패의 기억을 환기합니다. 장소 PKM 갤러리 예매 화~일요일 무료 관람 인스타그램 @pkmgallery
번져나가고 끝내 다가온 선
<임박한 회화>
전시 <임박한 회화>의 선은 정지된 화면 속에서도 생동감을 느끼게 합니다. 김주현과 김지윤, 박정원 작가의 회화적 특징에 주목한 기획전에서는 세 작가의 각기 다른 필법과 재료의 물성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수성 아크릴 물감을 고이게 하거나 흘려 층층이 쌓은 김주현 작가의 작품 ‘Wood Grain’은 우연과 의도에 의해 화면 위로 번져 시간의 지층까지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김지윤 작가의 ‘숲-바람안개’는 스쳐 지나간 풍경의 자락을 붙잡은 듯 속도감을 자아내요. 머물고 싶지만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숲의 한 장면을 작가의 감각과 기억을 통해 응집, 붓질로 재현했죠. 박정원 작가의 작품 속 스탬핑 흔적은 대상이 지닌 한시성과 영원성을 동시에 드러내 묘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세 작가의 이런저런 선을 볼 수 있는 기회는 2월 28일까지. 장소 페이지룸8 예매 화~토요일 무료 관람 인스타그램 @pageroom8
끊어지거나 꿈틀대며 말하는 선
<획, 세포, 그리고 유령>
2월 28일까지 열리는 2인전 <획, 세포, 그리고 유령>의 장순원과 정주원 작가에게 ‘획’은 조형의 기본 요소를 넘어 개인의 목소리가 됩니다. 두 작가는 캔버스 위에 드러나기 전 자신의 신체적 경험과 감각의 형상을 붓질로 탐색하죠. 장순원 작가는 짧은 획을 중첩해 인간과 비인간, 실재와 상상이 거미줄처럼 뒤엉킨 서사를 엮어냅니다. 정주원 작가는 이와 다른 형태의 반복적이고 꿈틀거리는 붓질로 역사화를 재구성합니다. 두 작가의 공통점은 즉흥적인 붓질로 형상과 비형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것입니다. 전시에 소개되는 15점의 회화와 7점의 드로잉은 명확한 이야기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붓질은 점과 선, 면 사이를 오가며 배의 돛이었다가 상처로 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저 자국으로 남으며 도래와 후퇴를 반복하죠. 전시 제목인 ‘획, 세포, 그리고 유령’은 이런 획의 성질을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획은 화면 곳곳에서 세포처럼 번져나가며 형태를 생성하는 동시에 유령처럼 붙잡히지 않는 불안정한 상태로 머물며 다음 이미지를 위한 초석이 됩니다. 전시를 통해 한 획 한 획에 주목하다 보면 깨닫게 돼요. 회화는 여전히 가장 친숙한 목소리라는 것을요. 장소 갤러리에스피 예매 화~토요일 무료 관람, 일요일 이메일 예약 인스타그램 @gallery__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