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엄마와 함께 지은 에디 캠벨의 집
직접 만지고 느끼는 경험을 차단당한 시대는 인류를 자연과 예술, 머무는 집에 대해 고민하는 철학자로 만들었다.에디 캠벨, 피에르 아르디, 에바 첸, 테일러 힐, 김원경, 릭 오웬스, 트로이 시반 등 패션 피플의 새로운 안식처는 몸이 아닌 삶에 필요한 패션이란 과연 무엇인가 영감을 전한다. 만발하고 물들고 깊어가는 10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답기에.
시골에서 안식처를 찾던에디 캠벨은 호수 두 군데가 있는 노샘프턴셔의 어느 주택지를 찾았다. 다음 단계는 그곳에 집을 설계하고 짓는 일. 물론 건축가 엄마와 함께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테스트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모녀가 둘이서 집을 설계하고 지어보길.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예의 바르고 깊은 이해심을 보여준 시간이었죠. 에디 캠벨(Edie Campbell)이 자신의 어머니 소피 힉스(Sophie Hicks)와 함께 최근 지은 노샘프턴셔(Northamptonshire)의 주택 발코니에 놓인 줄무늬 데크 체어에 구부정하게 앉아 솔직히 말했다. 과거에 우리는 살짝 짜증스러운 관계였어요. 그렇지만 갑자기 전문 기술이 필요한 상황에 놓이자, 서로를 굉장히 수긍하게 되었죠. 이것은 에디가 현대 건축을 수준 높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올해 서른이 된 그녀는 미술을 전공했으며, 펜디와 베르사체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보그>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모델이다. 그리고 소피는 영국 <보그> 에디터 출신으로 다수의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건축가다. 그녀의 정밀한 스타일은 끌로에와 폴 스미스 매장뿐 아니라 르 봉(Le Bon) 가문의 주택에도 우아한 실용성을 부여했다. 모녀는 둘 다 아직도 호수 두 군데 사이에 놓인 이 집의 완공된 모습에 조용히 감격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모녀의 관계가 영국 자택 봉쇄령이 이어진 14~15개월의 건축 기간에 더 돈독해진 것도 그들이 감격스러워하는 부분인 듯하다. 엄마는 끝도 없이 의견을 제시하죠. 에디가 애정을 담아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요. 저는 변덕쟁이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러면 엄마가 그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죠. 소피는 자신의 딸을 완벽한 클라이언트라 표현했다. 에디는 일하기 정말 좋은 상대예요. 굉장히 결단력이 있거든요. 결정을 내리면 그걸로 끝이죠. 삶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식이죠.
밤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15년간 패션계에서 정신없이 활동했고, 런던에서 거의 30년을 산 에디는 당분간 지낼 조용한 시골집을 찾고 있었다. 그녀는 이스트미들랜즈(East Midlands)에 있는 절제되고 과소평가된 노샘프턴셔를 선택했다. 그녀는 그곳을 잘 알고 있었고(소피가 1985년부터 이 지역 시골집을 빌려 온 가족이 매년 여름이면 이곳을 찾는다) 그곳은 전국 승마 대회가 열리기에 제격인 곳이기 때문이다(10대 시절부터 에디는 말과 가까이 지내며 정복을 입고 세미프로 수준으로 대회에 참가하는 아마추어 라이더다). 캠벨은 10채도 넘는 집을 둘러보다 양식장 건너에 자리한 농지로 둘러싸인 이 주택지에 발을 디뎠다. 예전에 벽돌 채석장이었던 이곳에, 이 집의 전 주인은 여러 건축물을 짓고, 호수 두 군데를 팠으며, 그 안에 강꼬치고기를 가득 풀어 민물 양식장을 운영했다. 에디는 첫눈에 이 부지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곳은 좋은 에너지를 지녔고 정말 조용했죠. 게다가 마구간과 작은 방목장으로 쓸 공간도 있었다. 2018년 5월 이 부지는 에디의 것이 되었다.
케케묵은 듯 보이는 방갈로와 쓰러져가는 헛간 같은 건축물을 철거해야 했다. 그렇지만 에디는 보기 좋고 번지르르한 사진 같은 집은 단호히 거부했다.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모던 하우스 혹은 으리으리한 은신처는 생각만 해도 싫었던 것이다. 그보다는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이 동네의 분위기가 담기길 원했다. 그녀는 코커스패니얼과 미니어처 슈나우저를 교배한 슈노커(Schnoker)종 애완견 팸(Pam)을 쓰다듬으며 길고 좁은 이 집에 시공된 회색 골판지(Corrugated Fibreboard)를 가리켰다. 이 자재는 이 집이 그 지역의 창고와 비슷해 보이게 했다. 분명히 주변의 다른 주택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죠. 그렇다고 옛날식 스톤 코티지를 새롭게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럼 정말 이상해 보일 거예요.
빌트인 다이닝 테이블을 온라인에서 개당 5파운드에 구매한 의자와 함께 세팅했다.
이 프로젝트는 글쓰기로 시작되었다. 소피가 에디에게 미래의 집에 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200자 정도로 적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완전히 놀랐죠. 에디가 그때를 떠올렸다. 제가 생각하던 엄마나 일반적인 건축 과정보다 더 로맨틱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요즘 소피는 모던 리빙의 심리학에 매료되었다.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고 느끼죠. 소피가 말했다.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클라이언트의 성향과 행동 방식을 이해하는 거예요. 그래야 편안함을 느끼도록 그들을 위한 뭔가를 시도하고 만들어낼 수 있죠. 편안함보다 개방성에 대한 욕구, 실내와 실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느낌, 멀리서도 말이 보이는 것. 이것이 에디의 세부 희망 사항이었고, 결국 매니페스토가 되었다. 그녀는 디자이너가 꾸민 집을 단호하게 거부했어요. 소피가 그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저 역시 스테이트먼트 건축을 좋아하지 않아요. 집이 주변 환경에 잘 어울리고 현지 주택 양식을 얼마간 차용하는 것, 신중하고 살짝 절제된 것이 좋아요. 그러다 보니 저도 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했죠.
에디의 말을 위한 조련장이 조성된 코너에 있던 이전 주택 부지를 선택하기보다, 그들은 호수 두 군데 사이의 길고 가느다란 땅을 최적의 드라마틱한 장소로 결론지었다. 늪 같은 땅속 18m까지 박힌 철골에 스틸 프레임을 용접한 것은 심플한 모듈식 구조를 마련해주었다. 그다음부터 이뤄지는 유리 시공부터 골판지, 바닥과 천장에 시공된 조립용 콘크리트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추가 작업은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방식이었다. 다만 독특한 것을 꼽는다면 우선 골판지로 된 차양이 있다. 이것은 평지붕의 굴곡을 완화하고 유리창 아래로 물이 흐르지 않게 한다. 또 다른 하나는 거친 모래와 핑크색 시멘트 회반죽으로 재미를 더한 급강하하는 인테리어 벽 두 곳이다. 이는 집의 한쪽 끝에 설치된 기능성 스테인리스 스틸 부엌과 반대쪽 끝에 있는 욕실을 가려준다. 모든 방이 직선으로 이뤄진 집은 살짝 우울하고 독방 같은 느낌을 줄 것 같다는 우려가 있었죠. 에디가 설명했다. 그런 곳은 생활하기에는 정말 편하지만, 어떤 작품을 걸어도 최악이에요.
캠벨 집안 여성들은 검소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빡빡한 예산이 이 프로젝트에 상당 부분 영향을 주었다. 평생 수집광으로 살았던 소피는 옛날 집과 프로젝트에서 구한, 수십 년간 시골 헛간에 묵혀 있던 자재를 재활용하고 싶어 했다. 에디가 어린 시절에 살던 웨스트런던의 집을 근사하게 꾸며주었던 낡은 참나무 책장과 옷장을 크기만 조정해 거실과 침실에 배치했다. 한편 소피가 1990년대 프로젝트에서 발굴해 오랜 세월을 견뎌낸 금빛 황동 문이 그 집의 입구에 장엄함을 보탰다. 거실에 놓인 소파는 에디의 아버지가 쓰던 것이다. 다이닝 체어는 개당 5파운드짜리로 옥션 웹사이트 더세일룸닷컴(the- saleroom.com)에서 구매한 것이다. 주요 경비는 예술 작품 구입에 쓰였다. 천장 조명은 그녀의 친구이자 아티스트인 크리스타벨 맥그리비(Christabel MacGreevy)의 작품으로, 에디가 2019년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프란츠 웨스트(Franz West) 전시를 찾았다가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사이드 테이블은 디자이너 제임스 쇼(James Shaw)가 그 주택 부지 숲의 소나무 토막을 가져다가 수작업으로 만든 것이다. 전혀 화려하지 않은 이들의 집은 가뿐하고 평온한 느낌이다. 에디와 그녀의 여자 친구이자 저널리스트 해나 핸라(Hanna Hanra)는 붉은빛 일출에 아침 일찍 잠을 깬다. 그들은 마구간을 청소하고 말을 운동시키며 비닐 터널을 오가고 점심을 준비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녀의 말 브루노(Bruno), 팅커(Tinker), 돌리(Dolly), 에드(Ed)와 에디가 해나에게 준 40세 생일 선물로 아직 이름이 없는 조랑말이 지금 이 호수 두 군데 중 더 큰 호수 뒤쪽 들판에 마련된 말의 궁전에서 지낸다. 그리고 느긋한 여름날 오후 <론리플래닛>의 과테말라 편 가이드북을 읽으며 보낸다(이들은 그곳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호수에서 수영을 하거나 최근 파티에서 쓰던 유니콘 모양 튜브 위에서 일광욕을 하기도 한다. 농부 세 명이 무단으로 들어왔어요! 에디가 웃으면서 그곳이 야외였고 코로나 방역 수칙을 잘 지켰다고 빠르게 덧붙였다. 굉장히 정감 가는 분들이더라고요. 그래서 그곳에 머물게 했죠. 커플은 해 질 녘이 되면, 겨울에는 개방형 난로 앞에서, 기발하게도 오토만 안에 숨겨놓은 TV로 2021년 오스카상 후보작을 감상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만났을 때 그들은 <Love Island>와 함께하는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버지도 그 쇼를 즐기죠. 그래서 그 쇼를 보고 나서 문자로 소통한답니다. 정말 재미있어요.
게스트 침실의 보빈 베드(Bobbin Bed).
겨울에는 개방형 난로가 거실을 따뜻하게 한다.
이 집은 캠벨에게 안식처가 되어준다. 2019년 5월 그녀는 낙마로 심각하게 뇌를 다치는 바람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도 세계 뇌 주간(Brain Awareness Week)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그녀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회복하는 데 6개월 넘게 걸렸다. 다시 대회에 참가하고 있어요. 아주 좋아요. 저는 원래 잘 잊는 성격이에요. 그녀가 만개한 에글란타인(Eglantyne) 장미를 가리키며 스스로를 웃기게 표현했다. 원래의 풍자적이고 영리한 최상의 상태로 돌아온 듯 보였다. 저는 장미 이름에 집착해요. 노인 같죠.
장미라는 주제가 나온 김에 말하자면, 소피와 에디는 이 집과 호수를 둘러싼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늪지 같은 관목 지대를 자연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결정지었다. 물론 깔끔하게 정돈할 필요는 있었지만 말이다. 그들은 이를 위해 사라(Sarah), 스티브 허즈번드(Steve Husband) 부부와 그들의 아들 알피(Alfie)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들은 검은 딸기나무와 덤불을 베어내고 귀룽나무, 자두나무, 오리나무, 자작나무, 야생 능금나무와 노샘프턴셔 토종 산사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데크 밑에 양치식물과 워터 민트를 심었다. 이윽고 차도부터 현관까지 이어지는 원석 양옆으로 야생화와 풀이 자랄 것이다. 이것은 기나긴 게임과 같아요. 에디가 말했다. 제게는 낯선 일이죠. 제 삶은 늘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거든요. 오늘 당장 뉴욕으로 가세요! 아니면 아무 일도 없죠. 그래서 그것은 새로운 기분이고 참을성을 갖는 것이고 자연이 원래의 과정을 밟게 하는 것이죠. 저는 그게 마음에 들어요. (VK)
양치식물과 워터 민트를 데크 밑에 심어 무성한 수풀처럼 조성했다.
거실 빌트인 소파 앞 오토만 속에 TV가 숨어 있다.